'Photo_사진'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3.06.17 2013.04.21
  2. 2012.11.08 Happy birthday to me, 29

2013.04.21

 

 

 

작년 이른 봄
SJ와 같이 마트에서 이런저런 새 살림을 사던 날
하트나 이름 새기는 DIY 컵은 좀 오글거리고
커플컵은 하고 싶어서
하나는 서울타워가, 또 하나는 뉴욕이 그려진 컵을 한 세트 샀다.

5년의 연애기간동안
인사동에서 각각 2년 간격으로 3만원, 5만원짜리 커플링을 맞췄던 것 말고는
커플로 뭔가를 맞췄던 것이 전무하다보니
커플컵, 이라는 단어가 뭔가 결혼의 시작 같아서
괜시리 의미를 크게 두고 혼자 배싯거렸던 기억이 난다.
설익은 결혼의 시작이었다.

오늘, 딱 삼백육십오일 되던 날
함께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컵 안에 수저받침이 제맘대로 턱 끼더니 빠지질 않았다.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에 출처불명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도
꽉 껴버린 수저받침은 제 자리를 들어앉아 비키지 않았다.
SJ는 못 쓴다는데, 나 혼자 그래도 처음이라며 미련이 남아
끙끙대며 컵과 수저받침의 색이 벗겨질정도로 밀어대다가
버려야겠다- 마음먹고는 방치해뒀다.
그러다 마땅한 필통이 없어 대충 우르르 쏟아놨던 필기도구를 보고는
이거다! 하며 컵에 쏟아놓고
화룡점정으로 지난 내 생일에 오빠가 선물했던 꽃송이를 장식한 리본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었다며 컵의 주둥이쯤에 묶어 놓았다.

버리지 않고 재활용했다며 SJ에게 으시댔고
함께 낄낄대며 돌아서는데

새로운 역을 맡게 된 컵이, 나를 잡았다.

수저받침이 꽉 껴버린 서울은 이제 필통이 되었다.
뉴욕은 더 이상 서울과 짝이 아니었다.
모두가 제 역할을 잃어버렸다.
커플컵이 아닌 뉴욕으로는 이제
식사 후 나란히 놓여있다가
한 쪽은 약차를, 다른 한 쪽은 맑은 생수를 따라서
잘 먹었습니다-하며 동시에 마시지 못할 것이다.
자기 전 물 한잔, 혹은 따뜻한 녹차를 담아
서울과 뉴욕이 베갯머리에 함께 앉아 이야기 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종일 방방 떴던 1주년 기념일의 나에게
혼자가 된 서울과 뉴욕이 그렇게 기쁜 일만은 아니라며
퉁명스럽게 현실을 알려 주었다.

또 하나의 시간이 추억이 되어 지나갔다.
순간 나는 나이를 많이, 아주 많이 먹었다.

 

 

 

Happy birthday to me, 29

 

그래, 새로운 시작으로

위로보다는 기쁨으로의 하루

 

prev 1 2 3 4 ··· 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