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변한다.
지금의 나는 당연하겠지만,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모두가 그렇다.
사람은 당연하겠지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일이 같은 환경이지만, 어떻게 보면 겪어보지 않은 시간 안에서의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어제의 그와는 다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은
종종 우리가 선택했던 것에 대하여, 그 당시에는 완전히 옳다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후에는, 내 스스로 그 당시의 선택을 그 당시 나의 가치관과는 다른 시선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게 된다.
친구를 선택할 때의 기준이나 취향이라던가, 사랑에 대한 방식, 배우자를 택했을 때의 마음,
하물며 내가 좋아하던 음식 등의 입맛 까지도 비단 몇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서
먹던 것을 안 먹게 되기도 하고, 좋아했던 사람을 싫어하게 되기도 하고
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을 조금은 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기에 같은 환경에서 지낸 친구가 소중했던 이유는
(그 환경에 대해 통칭하여 '학교'라고 칭하지는 않겠다. 어린 시절의 환경은 '학교'가 다는 아니니까)
그 당시에는 성인에 비하여 훨씬 순수했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여러가지의 의도로 그들을 선택했고, 선택하기까지
친구를 선택함에 있어 여러가지의 기준이 있었다.
나랑 취향이 맞는다던가,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던가, 혹은 왕따를 당하기 싫어서라던가,
나쁘게는 같은 친구를 싫어하고 또 그 싫어하는 이유가 같다던가 하는
그런 그 당시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여러가지의 이유로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에 친구가 되었는데
이 모든것이 충족되어 무리가 고착화되었을 때
문제는 여기서부터 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바뀌고,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들도 바뀌기 마련이다.
취향도, 입맛도, 사랑에 대한 방식, 또는 그를 택한 기준과 하물며 싫어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이유도
(처음에는 호불호의 사람과 취향이 '같은 환경에 있는 누군가'라는 명확한 범주에서,
그들과 내가 다른 환경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범주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연예인이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주 보통의 관념적인 범주까지로 변화된다.)
그 당시에 선택했던 친구들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들도 매일을 같으면서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그것이 변하는 속도가 지금보다 느렸기 때문이거나, 혹은
공동의 목표 안에서 서로의 환경과 공감대가 변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인지하지 못했기에
우리 사이는 변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먼저 변하는 이들을 옆에서 보거나 혹은 내가 그들보다 먼저 변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나 스스로의 기준을 이 나이에 맞게 세워가기 시작하면서
서로가 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안 맞는 것이다, 친구 사이의 공감대라는 것은.
어렸을 때의 공감대를 추억하면서 그 시간에 갇혀있는 네 모습과 내 모습을 서로에게 투영하고자 하기 때문에
변하는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먹을 수록 마음을 나누는 누군가가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네가 전 같지 않은 것이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너와 내가, 그들에게 내가, 나에게 당신이 멀어지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운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다.
내가 선택한 사랑도 비슷한 시선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시간에 시작하지 않은 사랑은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기에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정상적이지 않다 -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면서
자신이 몇살에 사랑을 시작했던지 간에, 그 나이에 맞게 사랑과 상대에 충실하지 못한 채로 어설픈 관계를 종료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이 풋사랑이었다, 혹은 동정과 연민이었다, 불장난이었다 등으로
모두를 이해시키기 위해 적당한 단어를 사용해 그 당시 자신의 감정을 폄하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당시의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서 그 당시의 나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럼,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성년'이라고 법적으로 허용하는- 스물몇살의 사랑은 올바른 방향일까?
대학교든 고등학교든 스스로 선택한 정도의 교육과정을 완료하고,
부모를 떠나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적당한 직장에서
어느정도는 꿈에, 또 어느정도는 현실을 함께 섞어서 스스로를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살아가다가
그 환경에서 선택한 뜨거운 남자와의 뜨거웠다 식었다 다시 적당히 따뜻한 연애를 여럿 반복하고
그 중 자신이 겪어온 남자들에 비해 괜찮다, 혹은 이런 남자 다신 없겠다고
그 나이대에 스스로가 선택한 남자와 결혼하여
스물몇살에서 서른몇살로 변하게 되는 이 나이에서, 스물몇살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당구를 좋아했던 내가 당구를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고
혹은 떡볶이를 좋아하는 내가 순대를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고
소주를 좋아하는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서
아 우리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비교적 어울리니 함께 할 수 있다 라던가
아 우리는 취향이 너무 같으니 천생연분이다! 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과연 지금도, 같을까?
지금도 그와 나는 현재를 사는 환경에서 서로를 그 당시와 같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함께 살아오는 이 시간이, 그와 나의 삶의 속도가 어디까지 같을 수 있을까
함께 걷자고 말하지만, 결국 사고와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 등이 모두 달랐던 나와 그가
서른몇살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치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그는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자신하지 못해서
혹은 나를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았던 스물몇살의 그의 눈빛이, 요즘은 가끔 다른 곳을 바라봐서
나와 함께 있고 나 또는 그가 먼저 꺼내는 어느정도의 관심을 가진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종종 나 혼자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내가- 그가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서 결국, 나와 당신은 다른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이 나이에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었을 때
또 다시 외로워지는 것이다.
아 내가 한 선택이 무조건 옳았던 것은 아니구나
그 당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지금의 내가 져야 하는거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많은 시간동안 선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어느정도는 무거워지고, 또 한 편으로는 조금은 무섭고
뭐 어때 지금 행복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한심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변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지금의 내 외로움도 어쩔 수 없는걸까?
사랑받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한 전제를
내가, 그가 나로 인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욕심을 채워야 만족한다면
평생 채워지지 않을 그 욕심으로 인한 갈증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걸까?
아직은 나이먹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지금의
예전보다는 조금은 빠르게 늙어가는 듯한 오늘에서
이미 선택해버린 친구와, 배우자와, 그리고 내 직업을 비롯하여
현재 위치를 통칭한 이 환경에 대한 어느정도의 불만과
그로 인해 채워지지 못하는 외로움과 허전함은
어차피 평생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고 살아가야 하는걸까?
만약, 결국 이 모든 생각의 끝에
포기는 노력보다 쉽고
취향과 생각이, 그리고 그 때의 '내'가 아닌 지금의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맞춰가기 보다는 이미 맞춰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틀리고 다른 점을 맞춰가고자 하는 욕심 보다는 외면하는 것이 빠르기에
이런 마음을 오래된 변한 친구와 공유하지 않고 그저 지금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아서
어쩔 수 없지, 라면서 오늘을 넘긴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의 내가 조금 재미가 없어지게 된다. 결국에는.
만약 그러기는 싫다면
변하는 너를, 변하는 나를
지금의 달라진 너와 내가 서로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마흔 몇살의 내가, 쉰 몇살의 내가
서울에 살다 부산에 살다 대전에 살다 하는 내가
어쩌면 배우자를 찾고, 또는 잃고, 배우자가 없을 수도 있는 너와 내가
이 친구가 오늘은 마음에 들었다가, 내일은 마음에 안 들었다가 하는 우리가
옛날엔 모두 맘이 맞았는데, 지금은 대략 반 정도만 맘이 맞는 우리가
돈이 많았다 적었다, 큰 차를 탔다 걸어다닌다 하는 우리가
스물몇살의 뜨거운 사랑을 서른몇살까지 서로에게 강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이
변하는 시간 속에서 어느정도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겠지만, 흘러가는 속도는 적어도 비슷했으면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내가 배운 변하는 시간 안에서의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순수 안의 순수라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너는, 나는
이 조금은 씁쓸하고, 조금은 불완전해서 불안한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지금의 서로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앞으로 살아갈 내가 선택한 이 방법 안에서
결국은 변하겠지만,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동안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에서
변하는 내 모습 그대로, 또 너에게 나는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게 가능해진다면
나는 너에게 움직이지 않는 시간, 흘러가지 않는 삶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