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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2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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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할 때 가만히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살펴보면
물론 아직 종이책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예전보다 꽤나 많이 e-book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e-book 전용 단말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그나마 그것도 귀챦고 비싸다고, 텍스트 뷰어 기능을 지원하는 mp3p나 pmp로 책이나 잡지를 본다.

나같은 디지털기기 오x쿠가 
(좋게 말하면 얼리어답터겠지? 난 신제품 빨리 보자고 디지털타임즈 RSS까지 받아보는 사람이다;)
굳이 E-book을 보지 않고 종이책을 구입해서 보는 이유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휴대용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려고만 하면 집에서도 손쉽게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다. 요즘은 오디오북까지 나오지 않나)

처음 책을 사고, 포장하고, 책 도장이 잘 찍히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찍을때의 느낌이라던가
책을 들고 다니면서 묻은 손 때라던가
책을 넘길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이라던가, 넘길때의 그 소리라던가
편하게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적당한 책의 크기, 글씨의 느낌이라던가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던 중, 나도 모르게 묻은 커피 얼룩이라던가

그런것들이 좋아서,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옛날 방식의 매체를 이용하곤 한다.
(물론 아직 e-book 뷰어가 대중화되진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을 이용하지만
지금같은 추세라면 몇년 안에 종이책 출판보다 e-book 출판이 더 대세가 될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CD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넌 mp3p가 있는데도 왜 cdp를 사냐고 묻는다거나
왜 굳이 매번 cd를 사고, 그 귀챦은 cd케이스와 cdp를 다 들고 다니냐고 의아해하는데

편리함으로만 따지면야 cdp가 요즘 한창 즐기고 있는 아이팟에 비할까마는

그래도

원하는 cd를 사려고, 집에서 클릭질 몇번이면 끝날 것을
음반점을 몇 군데를 뒤져가면서 구입하는 수고를 한다던가
지나가다 들린 좋은 노래가 있어서, 그 노래를 찾으려고 음반점을 들어간다던가
몇날 몇일동안 기다린 가수의 앨범을 구입하고 나와서 비닐을 뜯을때의 기대감이라던가
mp3 파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들리지 않는 음을 들을 때의 뿌듯함이 너무 좋아서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면서 cdp를 이용한다.
cdp가 없으면 중고시장에서 한달을 넘게 뒤져서 원하는 cdp를 찾아내고
그걸 사려고 흥정하고 기다렸다가 서울까지 굳이 올라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도 다소 유난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 고집은 계속 유지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편리함을 이유로 점점 사라져 가는 그 향수를 지키고 싶은 이유도 있고
그저 편리함, 간편함만을 목적으로 나온 디지털기기에 지고 싶지도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초창기 시절에 한창 유행하던 리얼플레이어 (ra) 파일이 사라지듯이
언젠가는 mp3도 사라지겠지.
dvd 유행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블루레이가 나오는데
e-book은 얼마나 가겠는가. 갈수록 작은 UMPC가 나오는데, 지금 산 e-book 리더 단말기라던가
고작 텍스트 조금 지원되는 pmp 기능도 몇 년 안가 사라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매체에 열광하고
이전에 나오던 매체들은 고물이 되고, 플레이어로 재생할 파일조차 나오지 않게 되겠지.

그렇다면, 당장 그 파일들에게도 추억을 담기에는
그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지 않을까?
그때 가서 또 다른 플레이어를 구입하고, 전에 있는 기기는 쓸모 없다고 버리는 행동이 반복되면
물론 그 책의 내용과 음악의 감성을 통해 느끼는 감동은 있겠지만
눈에 계속 보이지 않는 그것이, 감동을 얼마나 유지시켜줄 수 있을까?
손으로 만질 수도, 내 품에 안아서 느낄 수도 없는 그 매체가 내 기억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남을까?

이미 산 CD는, 이제 컴퓨터로밖에 들을 수 없는건가?
불편하니까 더이상 CD를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면
음악은 그저 목소리와 쿵쾅거리는 비트, 음의 혼합만을 듣자고 있는게 아니라
각 악기와 효과는 그 악기와 효과를 하나하나 다 들어주길 위해 모두 다른 사람들이 연주하는걸텐데
그 사람들의 수고까지 내 '편리함'만을 목적으로 본의 아니게 무시하고 있는건 아닐까?

조금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몇날 몇일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며 믹싱을 하고
이곳엔 기타가 들어가는게 좋겠다, 피아노가 들어가는게 좋겠다, 코러스는 아주 얇게라도 넣자 하며
수십명의 세션이 모여서 계속 같은 곡을 연주하고, 또 연주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감정을 더 싣기 위해 가수는 비슷한 곡들을 그 밀폐된 곳에서 노래를 계속 부르고
조금 더 깨끗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그 책의 감성을 유지하고자
보다 더 좋은 내용의 책을 쓰고자
작가는 링겔을 맞아가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담아 책을 쓰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쇄소에서 종이를 고르고
주말도, 휴일도 없이 밤을 새며 작화실에서 표지와 삽화를 그리고
약속된 날짜를 맞추려고 고생하면서 한권의 책이 나오는데

그 모든 행동들을
'CD 무겁고 귀챦아. 몇개 기타소리 좀 안들리면 어때, 그냥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지' 라던가
'책 때타고 드럽게 그걸 어떻게 들고다녀? 그냥 파일 몇개면 몇십개의 책을 다 볼 수 있는데' 라며  
온라인에 이름 하나 달랑 박힌채로 올라오는 컨텐츠를 이용하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나도 꼭 자판기에서 콜라 빼듯이 무심결에 클릭하는 행동들을 갑자기 주저하게 된다.
mp3p를 이용하고 있던 나도 '아, 이래도 되는건가. 이 음반은 사야하지 않을까' 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아예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참 씁쓸한 일이다.)
옛날엔 한곡만 좋아도 일단 cd를 다 사서 차근차근 부클릿을 보며 들어봤었고
몇줄의 감상평만으로도 그 책이 맘에 들어서 구입하곤 했었는데..

그저 '글자의 조합'이 책이 아니고, '음의 혼합'이 음반이 아니다.
그 매체에 있는 모든 표지(cd라면 부클릿이겠지.), 종이 질, 디스크, 케이스 하나까지 모두 합쳐져서
하나의 '책'이 되고, '음반'이 되는게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나같이 굳이 귀챦은 일을 감수하는 까탈스러운 사람들이 아직 많기를 바란다.

다른건 몰라도 
'아, 이 책은 온라인에서 평을 보니까 괜챦더라, e-book으로 보기엔 아깝다' 
'이 음반은 mp3로 들어보니까 좋더라' 한다면 구매해서 소장해주기를 바란다.

그거 귀챦아서 안 한다고, 시대는 변한다고
음반이 줄어드는 것 처럼, 곧 책도 줄어들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그렇지 않다고, 음반도 책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매체는 꾸준히 유지될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내 한몸 조금 편하자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매체들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 많은 수고를 하면서 하나의 감성을 만들어내는 많은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이 정당한 댓가를 받고, 우리에게 꾸준히 좋은 정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고를 해주길 바란다.

난 오늘도 남들보다 '조금' 편하자고, 조금 더 깨끗하자고
딱 '요만큼'의 만족을 더 느끼기 위해서

책을 사고 집에서 책도장을 찍고
아스테이지를 오려서 책을 포장하고
오래된 책은 헌 책방을 가거나, 도서관에 신청하여 보려 노력하고

CD를 구입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좋은 음악을 찾으려고 음악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리뷰를 보고
가끔은 하루에 고작 두세시간 듣기 위해, 한두장의 CD를 담기 위한 CD케이스와
무거운 CD플레이어를 큰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다니는 고집스러운 올드유저니까.

책은 한권에 10,000원에서 15,000원 정도 한다.
음반은 한장에 10,000원에서 20,000원 정도 한다. (EP는 심지어 7,000원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술 한번 덜 먹고, 밥 한끼 덜 먹으면 살 수 있다.

적어도 거의 매일 책을 읽거나 출퇴근길에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한달에 책 한 권, 음반 한 장 정도는 구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내 작은 고집과 수고가, 그보다도 더 큰 노력과 공을 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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