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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1 엄마, 두번째.

엄마, 두번째.

 

 

서른 평생, 나에게 엄마에 대한 기억은

항상 우는 것 뿐이었다.

울거나, 화내거나..

 

아빠가 제 멋대로 살아서 화내고, 울고

우리가 속을 썩여서 화내고, 울고

무엇 때문에 화내서 울고, 화내고, 울고, 화내고

물론 중간중간 엄마의 따뜻함은 있었겠다마는

너무 절대적인 시간동안 내 엄마는 울었다, 그리고 화를 냈다.

 

물론 그녀의 삶이 너무 척박했고

그 척박한 삶의 5할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또 5할은 내 아버지가 주었고

척박한 삶을 이기기에는 그녀의 감성이 너무 여렸거나, 혹은 이성보다 감정이 많이 앞섰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난 그 흔한 엄마가 내가 아파서 이마를 만져주던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스킨쉽이라던가, 아 엄마는 나에게 이랬지-라는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엄마는 아주 교양있는 사람이었고, 학식이나 지식이 충만했고

많은 이에게 높은 인성으로 존경 받고 있었고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이성이 존재하는 사람이었고,

엄마가 그렇게 막장 인생을 살거나,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사느라 우리를 방치한 것이 아닌데도

엄마는.. 그랬다.

나에겐 그저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주어도 받아먹지 못하는 내 인성의 탓이라면, 그런 나를 만든 당신의 탓이라 이기적이게도 손가락질 해볼 만큼.

 

엄마,라..

 

나에겐

어렸을 때는

내 부족함을 모른채, 그저 칭찬을 해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결핍과 원망이 있었고

그것은 커오면서 하필이면 엄마의 감성을 닮은 내가 헛배는 더 그 마음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이를 더 먹은 뒤에는

엄마가 가지지 못한 많은 부분에 대한 결핍과 함께

혹은 그 결핍을 주는 상대 (아버지라던가) 에 대한 원망만으로 청년기를 꼬박 지낸것 마냥

그저 아프고, 모자라거나, 혹은 화를 내는 존재였던 것 같다.

화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던가,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살던 시절도 몇 년 있었지만

지나보면 결국은 그것도 그녀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만족을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근본적인 부유함이라던가, 혹은 부족하더라도 남편이란 존재의 충만한 배려심,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것 같지만

그런걸 바랬다면 내 아버지를 만나서는 안 됐던 거였지..

자식으로 보기에도 아버지는 그녀가 원하는 그 어떤것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출생부터 한참 뒤의 마지막까지도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만 삶의 의미가 있는 사람..

내가 원하는 본질적인 것을 채워야만 주위에 있는 다른 삶이 보이는 사람.. 이었다.

 

난, 그리고 내 동생은

엄마의 양수를 받아 먹듯이 아버지로부터 파생되는 엄마의 불행을 받아먹었다.

불행으로부터 오는 슬픔을, 자괴감을, 분노를, 그에 따른 허무함을 성장하는 모든 기간동안 충실하게 받아먹었다.

아버지에게 엄마는 그림자였다.

엄마에게 아버지는 삶의 모든 결핍과 부족이 결집 및 응고된 하나의 괴물같은 존재였다.

괴물이지만, 그 괴물을 너무 오랫동안 감싸고 살았기에

그것 또한 내 삶이 되어서 이젠 버릴 수도 없는, 그런 야누스같은 존재..

 

엄마가 아버지에게 전파했던 종교는 곧, 엄마 인생의 발목을 잡았고

그것은 자식들의 발목을 잡았으며

무엇이든 불태우고 재만 남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던 내 아버지의 성정과

또는, 사리 하나 없이 오로지 재만 남던 내 아버지의 단점과 너무 절묘하게 맞물려

위안이 되어야 했던 종교는, 위안보다 괴로움을 헛배는 더 많이 안겨주었다.

 

아버지의 삶은 모든 가족이 나누어 살아야 했고

엄마의 괴로움은 아버지가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기쁨이 되고 싶었다.

다른 이에게-내 아이에게-슬픔과 종속으로 점철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삶을 나는, 절대로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되새김만으로 유년과 청년기는 모두 보내었다.

 

많은 것이 결핍되어, 더 많은 이에게 슬픔을 주게 된 나는

삶의 굴레에 종속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쓴 탓에, 스스로는 벗어나게 되었다.

 

엄마는 그 슬픔 속에 방치한 채로.

 

엄마를 보면 슬프다.

모든 이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슬픔과는 또 다른, 엄마는 나에게 그런 괴로움을 준다.

내가 구원해 줄 수 없는, 엄마의 삶을 대변하는 아버지의 삶이라는 맨홀 안에 갇혀

아버지의 성공이 엄마의 고통의 시간을 보답할 수 있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신기루 같은 행복을 좇는 내 엄마가

 

볼 때마다 너무 슬프다.

 

나에게 엄마는 눈물이고

나는 엄마의 과오이다.

 

내가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키우면 안됐는데, 잘못했다... 라는

 

아버지의 선택과 더불어 함께 가는 과오같은 존재.

 

위안이 되어야 할 종교는, 그 종교에 귀의한 자의 가족에게는 지옥이 되었고

지옥 안에서 겨우 빠져나온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죄인이 되었다.

 

과오, 죄인, 슬픔의 결정체인 나라는 존재가

오늘도 엄마의 마음속에 죄책감, 안도감, 슬픔, 질투와 같은

속되고 속된 감정이 뭉쳐져 눈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나란 존재는 엄마의 눈물만큼 슬프다.

그리고, 그 인생만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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