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little forest, 2015)
영화를 볼 때, 제일 좋은 부분은
스토리가 한창 전개될 때도 아니고
가장 격정적인 부분도 아니고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말미도 아닌
'아, 이 정도면 실컷 즐기면서 많이 봤나' 싶어서 시간을 봤을 때
아직 즐길 시간이 한참 더 많이 남아있는 그 순간이다.
실컷 즐겼는데, 지겹지 않은데
아직도 한참이나 더 즐길 수 있다니!
아주 재밌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가지 않고
부족하다 싶을 때 시간상 충분히 봐야 할 영상이 남아있는
그런 영화가 너무 좋고
그 영화를 볼 때, 시간을 확인한 후 '아, 다행히 더 남았구나' 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애정한다.
특히나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쉽게 오는 순간은 아니기에, 더욱 아끼고 소중한 순간이기도 하다.
'가을_첫 장면'
이 영화는 매 순간마다 '아, 다음은 어떤 내용일까' 라는 기대감이 아닌
'이 순간 그대로, 그냥 끝나도 참 좋겠다' 라는.. 매 장면마다 마침표를 안고 가는 것이 당연한 듯한 화법을 이어간다.
일본 만화 원작.
한 계절마다 한시간 씩,그리고 두 계절에 한 편씩.
총 네시간 재생, 두 시간당 한 편 꼴로 총 두 편이 묶인 영화다.
얼마 전 '여름과 가을'이 개봉했고
돌아오는 5월엔 일본에서 '겨울과 봄'이 개봉한다.
개인적으로 고바야시 사토미가 주로 연기하는 담담한 수필성/단편풍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 영화가 나올 때마다 두근거릴 정도로 기대하며 보곤 하는데
보다 보면 꼭 같은 몇가지 화두가 남고, 그것은 깔끔한 답변을 받지 못한 채 부유하다 사라진다.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과연 이런 류 영화의 답은 홍상수일까, 그가 그것을 바라고 있을까'
'홍상수와 고바야시 사토미는 너무 다른 성격이 아닌가.
두 영화인을 다 좋아하는 나 같은 팬들이라면, 홍상수와 고바야시 사토미 간 차이를 알지 않을까
결국 그 둘이 같지 않고, 국내에서 '사토미류'를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을 내는 배우와 감독이 없다는 것은
국내 영화에서 시원하게 채워지지 않은 갈증으로 남을 뿐이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아주 좋은 영화다.
그리고 이런 류 영화가 국내감독 손에서 제작되기를
이번에도 간절히 바란다.
+
내 마음을 영화 속 사람이 대신 목소리 내서 말해주었다.
차마 할 수 없는 말. 사람 옆 대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