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gyoung_ 2009. 12. 10. 14:01





요 며칠
아무 이유 없이 입 안쪽에 큰 구멍이 나서, 밤낮으로 끙끙대고 있다.
밥 먹을때도, 뭘 마실때도, 씻을때도 입이 아파서 움찔, 움찔.
오라메디를 배부르게 먹을 정도로 마구 바르고 자도 별 차도가 없다.
이거 그냥 견뎌야 하나, 병원 아니면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싶어 답답하다.

어제도
오라메디를 바르고 자려고, 안방에서 약통을 꺼내려고 들어갔는데
장 안에 엄마의 향수가 모여 있어서, 쭈그리고 앉아 하나씩 보던 중에 
아주 오래전에 엄마에게 준 샤넬 향수가 보여, 무심결에 꺼내들었다.

몇년 전에 아버지와 크게 싸운 후, 아버지가 나에게 몇주만에 화해를 청하며 선물로 편지와 함께 준 향수였는데
나이와 맞지 않게 비싸고 향도 독해서 엄마 쓰시라고 줬던 기억이 나서
아직도 독한가.. 하고 살짝 뿌려서 맡아보았다.
추레한 잠옷 차림인데도, 뿌리면 왠지 기분 좋게 잘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장식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칙칙 뿌리고, 연고를 바르고, 자려고 누워서 다시 맡아봤는데

나에겐 잠시 맡기도 힘들 정도로 독하던 그 향수가
이젠, 아무렇지도 않더라. 아니.. 오히려 참 부드럽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뭔가 큰 일도 없이, 오히려 어떻게 보면 구질구질한 상황에서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라는걸 느끼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진 않더라...

생각해보면
입술만 닿아도 쓴 맛이나서 바로 치우던 원두커피를 마시게 된게 언제부터였는지 
종종 거칠던 말투가 둥글게 바뀌고, 아주 급해서 욱하던 성격이 조금씩 잦아들게 된게 언제부터였는지
6센티 구두를 신고 몇시간만 걸어도, 집에 돌아오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힘들었는데
어느새 그때의 2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높은 힐을 신고 하루종일 걸어도 멀쩡하게 견디게 되었는지
눈화장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어색하고 부끄러운 화장을 대충 하고 나가서 놀림받던 때가 무색할 만큼
한 해가 지날 수록 화장품의 종류가 하나씩 늘어가고, 나를 치장하는 시간이 길어졌는지 
락보다는 재즈가, 라이브 클럽보다는 와인바가 더 먼저 생각나고
비누향만 있으면 족했었는데, 언제부터 향수를 뿌리고 나가지 않으면 조금은 준비를 덜 한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속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겉만 열심히 나이를 먹고 있구나 싶어서
아니, 어쩌면 마음도 같이 나이를 먹은건 아닐지 걱정이 돼서

매년 12월의 마음이 그랬지만
올해는, 조금은 더 씁쓸하고, 한 해가 지나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가 조금은 더 밝고, 조금은 더 의욕이 넘치던 그 때에
'한해, 한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매년 어쩌다 보니 살게 되더라' 라는 말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문득, 문득 무심결에 그렇게 말하고 살았던건 아닌지
사는 목적도, 목표도 어느정도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놓아버리게 된건 아닌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르겠어서, 더 막연하고 초조해진다.
그냥저냥 대충 시간을 보내라고 내가 하루종일 숨 쉬고, 움직이며 살고 있는건 아닐텐데. 

내 20대 중반의 마지막 해가 겨우 3주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느끼게 되고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저냥 지나쳐버린 내 시간이
이 악물고 한번이라도 제대로 노력한적이 있었나 싶은 내 마음이

너무 아깝다. 마음이 급해진다. 어서 빨리 정리해야 한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
..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것도 없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한 해, 한 해가 지나갈 수록 쓸데없이 겁만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거나, 또는 보기 좋게 핑계 댄다는 말을 줄인 것 뿐이라는 것을

요즘 정말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