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5월 2주차 생부림.
1.
이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 같아선 일정을 좀 더 당기고 싶지만
어차피 나나 새로 들어올 쪽이나 빚잔치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더 재촉 않기로.
괜히 혼자서 조바심이 나 이것 저것 미리 사들이거나 꾸밀 것들을 고민하는 나날을 반복하고 있다.
막상 이사가면 또 적응 늦고 낯 가리는 성격에 한동안 잠도 못 자고 뒤척일 거 뻔한데.. 지금 집에서도 아직 숙면이 안 되면서;;
이사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미 이 집에서 마음이 떠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새 집은 집 자체는 좋지만 교통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안 좋다.
일단 도보 10분 거리만 지나면 완전 촌이다.
도보 10분, 최대 20분 안에 마트, 종합병원, 카페촌, 백화점, 기차/지하철역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던 지금도
버스 배차시간이 다소 멀고 KTX까지 바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10분 이상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이사갈 집은 10분은 커녕 차가 없으면 걸어갈 수도 없는 길 상태라 무조건 면허를 따야 한다.
그래서 이사가기 전 반 울며 겨자먹기로 면허 취득 (도로 연수 포함)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옆 동네에 비교적 평이 좋은 운전학원이 있어 상담 받아보니 2주 정도, 총 약 45만원이면 취득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으면 참 쉬운데, 공대출신 전 IT노동자 주제에 큰 기계에 대한 공포증도 살짝 있어서
뚜벅이 인생 31년, 스스로 자유자재로 제어되지 않는 이동수단을 몰고 다닌단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실제로 모니터 바깥에서 비 맞은 개마냥 숨과 손을 마구 떨어댄다.
주위에선 넌 원래 기계를 잘 다뤘으니 잘 할거다- 라고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조작미숙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일상과 생명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우려심이라
그 격려가 마음은 참 고맙지만 크게 위안과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면허 취득 후 몰아야 하는 차는 SJ가 아끼는 새 중형차..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겁을 한 국자, 두 국자 덥썩 덥썩 집어먹고 있다.
아아, 뭐 이렇게 쉬운 게 없냐.
촌부도 봉고차를 끌고 다닌다는데, 잘 하겠지... 설마.
2.
이 핑계, 저 핑계로 한 두어달 정말 숨 쉬고 밥 먹는 동물로 살았다.
깊은 생각도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걱정이라던가 삶에 대한 고찰도 없었다.
소위 말해 '남편 돈으로 팔자 핀 전업주부' 생활을 한 셈이다.
1년 반 이상 계속되는 지지부진한 준비생활에 처음으로 좀 지겹기도 하고
그저 반복될 뿐인 습작에 대한 이렇다할 평가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라던가
(원래 나갔던 합평은 동아리 내부에 보이지 않는 텃세에 내 작은 인간혐오가 발동하여 그 이상 나가지 않았다.)
두세번 용기내어 덤볐던 공모전에 깔끔하게 똑, 똑 떨어지다 보니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설익은 자신에 대한 작은 경멸도 있었다.
중간 중간 안팏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 때문에 정신적 타격을 입어 펜을 놓았다- 는 것은 정말 납득 불가능한 핑계고.
이제 다시 책도 먹어치우고, 무엇이든 쓰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다시 모든 부분이 복잡해진다.
요리/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글도 놓지 않겠다는 나름 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도전을 다짐하고
과연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장판이 뭉개 닳아지도록 엉덩이만 부벼가며 걱정과 입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더 이상 먼지 먹는 하마는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한 것 만으로도 한심한 자신을 반은 버린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순간을 회상할 때 나는 어떤 시간과 자신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달팽이, 굼벵이, 거북이 같은 삶이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껄껄껄 하지 않도록.
그래, 뭐든 끈질기게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