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록
원래는 이 오늘의 기록도 페이스북에 끄적거리는 내용이었다.
블로그는 '습작 노트'의 개념으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고
굳이 이 블로그를 홍보하지 않으면서 페이스북에서 지인들과 근황을 좀 더 정제된 방식으로 나누고 싶은 것이 두번째였다.
뭐.. 결론은 실패였다.
그들이 나누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스스로 '나눈다'의 기준이 댓글의 유/무로 나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유독 '오늘의 기록'에는 리액션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서 그것을 왜 페이스북에 계속 써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가 작아지는 것 같아서 좀 싫었다고 해야 하나, 무튼 그래서 그만뒀다.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다시 끄적거리고 있으니, 차라리 이것이 마음이 훨씬 편하다 싶으면서
왜 그런 어린 짓을 했는지 조금 후회까지 되고 있다. 애초에 나눔을 원하는 이들과 나누려 하는 것이 맞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혼자 일기장에 써야 할 이야기를 봐달라고 한다니,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1.
이런 가라앉고 음습해진 마음에 '가을을 탄다' 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그게 맞을까, 틀릴까.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일고여덟시쯤 일어나서 나름 건강식으로 아침을 챙겨 먹고, 한시간 남짓 이것저것 정리를 하며 TV를 보다가
옷을 갈아입고 간단한 스트레칭 후 운동을 나간다.
약 1시간정도 운동 후,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바로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잠깐의 웹서핑 후 강의를 듣는다.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 또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스스로 챙기는 여러 일을 하고
그가 돌아오면 함께, 아니면 혼자 저녁을 챙겨먹은 후
해가 완전히 지고 하늘이 잔뜩 까매진다 싶으면 꽤 자주 맥주 한두캔을 마신다.
습작도 그 때 종종 쓰고, 마시면서 영화나 밀린 드라마 등을 보기도 하고
대략 자정에서 새벽 두시 사이에 잔다. 한 6시간 정도..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맥주를 사기 위한 수퍼 정도..
누군가 보면 성공한 백수다.
따박 따박 배우자가 돈 벌어다 주고, 제 하고싶은 일 한답시고 즐길거 다 즐기고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나는 아주 기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과연 당신은, 그렇게 살면 정말 기쁘고 감사할 수 있을까.
그럼 돈 많은 부자는 절대로 우울증 따위 걸리면 안 되겠네, 모든걸 다 갖추고 있으니까.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끊임 없이 갈망하고, 가졌을 경우엔 또 다른 것을 원하지
난.. 그래, 꽤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가진 것이 돈이라면 지금의 여유가 내 돈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에게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부라고 말하겠다.
분명히 결혼으로 배우자가 나에게 준 이 여유의 선물은 확실히 부수적인, 크고 작은 행복도 함께 누리게 해 주었고
그것으로 지금 이런 사치스러운 고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듯, 지금의 가라앉은 나는 그가 준 행복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고유의 것이다.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배우자가 '이건 네 것이야' 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난 내 땀을 흘려서 얻은 것 만으로 살아왔다.
그것은 내 배우자와 '나눌 수는' 있지만 '배우자의 것'은 아닌 내 것이다.
지금의 이 모든 행복이 '배우자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생각으로 부터 오는 상실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나 자신의 행동과 생각 모두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이 모두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갈수록 침잠하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 차갑게 오른 발 끝을 살짝 만져본다.
방 안 공기가 서늘한지 꽤나 잔뜩 설어 있는데
내가 숨겨놓은 마음을 찾은 것 같아, 굳이 따뜻하게 데우지 않고 그냥 바라보고 있다.
2.
지난 주말엔 친구와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 왔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그 둘을 이어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다.
얘가 주선자예요 라는 말을 듣는 것이 상당히 민망스럽기도 했고, 한 편으론 그와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라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시절의 얼굴 몇 개가 그 자리에 동석할 거라는 예상이 나를 아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안 갈 수 없는 자리인 것도 확실했기에
(그녀가 보지 않아 다행이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금은 내키지 않는 결혼식 참석을 했다.
다행히 그 얼굴 중 얼마는 오지 않았고, 얼마는 왔겠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상관 없이 내 생각으로는 꽤나 당연하게 넘어가리라는 얼굴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부와 같은 시기에, 같은 무리로 친해져서 사이가 벌어지고 좁혀지기를 반복했던 한 친구와
유난히 친해질 법 하면서 또 항상 설익게 유지되었던 다른 친구, 모두 같은 무리.
그들과 나는 서로 원하지 않으면 보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면서 점점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나는 갈수록 사람에 대한 결벽증이 심해지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내가 그들에게 유쾌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연락하지 않고 있던 차였다.
신부의 청첩장을 받는 자리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났고, 그 이후에는 결혼식장이 처음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내가 결혼하던 때 (내 친분의 결벽증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절에)
그 친구 중 한 명을 끝까지 초대하지 못한 채 그녀로부터 축의금을 전달 받았던,
결과적으로는 내가 아주 못된 짓을 했던 사례가 있었고
그것을 최대한 그녀와 접할 때마다 사과했던 또 다른 사례가 있었으며
그들과 간격을 좁혀 보고자 지금의 집으로 초대했고 그것 또한 파토가 났던 사례가 있었다.
그 몇가지의 사례로 나는 그녀들과 꽤나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멀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이 결혼식에 동석하는 집단으로 그녀들은 내 범주 안에 있지 않았다.
(그녀들이 내가 동석하길 원하면 먼저 연락하겠지, 라는 비겁한 마음 또한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또한 동석할 마음은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어차피 서로 불편할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아마도.. )
비교적 그녀들보다 더 왕래가 잦았던 신랑측의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고
그녀들이 눈 앞에 앉아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연락하지 않거나 조금은 피했다.
얼굴을 보면 뭐라고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연락하지 않아서 미안해? 피차 연락 못 받고 찾음 받지 않은 나도 있는데?
언제 왔어? 그게 더 웃기지. 식 시작부터 뒷통수를 정확히 보면서 바로 뒤엣에 앉아 있었는데?
야 지금부터 같이 다니자? 그건 제일 코미디다. 피차 원하지 않는 동석을 식이 끝난 후부터 함께 하자고?
그래서 더욱 피했고, 신랑측 지인들과 최선을 다해 즐겁게 식의 하객임을 즐겼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식당에서 그녀들이 앉는 것을 보고,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책무를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그녀들에게 가까이 가 인사를 건넸고 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은 여기서 일어났다.
한 명은 평이한 얼굴로 웃으며 '언제 왔어?'등의 인사를 나눴는데
다른 한 명, 가장 자주 서로가 껄끄러웠던 그녀가 인사를 나누지도 않고 싸늘하게 쳐다보고만 있다.
왜?
네 눈엔 또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항상 머리 위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해준다' 라는 태도를 유지하던 네가
내가 굽히고 너희와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에 또 화가 났을까?
네 머릿속의 너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그 위치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었던 걸까?
내 인사의 유/무가 네 기분에 꽤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나는 유쾌해야 할까, 그 반대일까.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거나 정 반대일 수 있음에
그 어떤 사람의 마음도 확신하거나, 혹은 나와 같을 것이라 공감하며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 나는 무섭기도 했고, 도망치고 싶었지.
그 모든 날 선 반응이 다 싫었다.
어쩌면 대면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이 모두 나에게는 너무 괴로웠기에
도망치고 싶었다는 말이 더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너희들은 나에게 힘든 상황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기록한 필름 같다고 느껴지면서 참 힘들어졌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면서, 특히나 나는 늦게 찾게 된 내 자아에 있어 너희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 참 괴로울 지경이었다
이런 말을 그녀들에게 할 수도 없었지만
변해가는 그녀들의 태도가, 역시 내 그 모든 마음이 행동으로 거울처럼 비춰지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니
어차피 말해봤자 이해할 수도 없었다는 생각에 몇 안되는 내 어린 시절 인연을 구역스럽게 외면하게 되었다는
이 모든 사실이,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이것은 내가 아끼는 친구의 결혼식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아주 끔찍한 고문실이었다.
그녀들을 포함하여 아스라히 잊혀진 전 인연의 지인들과
또한 좋거나 그렇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 연락이 끊긴 몇 지인들까지
스스로 단정해지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것을 모른 채
꽤나 제멋대로 살아온 시절에 나를 겪었던 수많은 지인들로부터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 너무 고됬고
나를 기다리는 그가 눈물이 날 만큼 보고 싶었다.
모든 부끄러운 치부를 아무렇지 않다고 감싸줬던 그의 품에서 나는 한동안 쉬고 싶었다.
하루가 참 힘들었다.
이것을 내 안에서 꺼내 이렇게 끄적이기까지 며칠동안 나는 속으로 꽤나 고생스러웠다.
모두는 변하지만, 나는 적응이 너무 느려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도 생각해보지 못한다.
기억의 망각 또한 나는 믿지 못한다.
그런 사실들이 스스로를 고통의 구덩 속으로 밀어넣어
암전으로 쌓고 깊숙히 가둬두었다.
그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당연하다고? 아니, 당신은 누군가는 확실히 믿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나를 향한 사랑이라던가, 자신의 마음이라던가 무엇 하나는 확실히 믿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못한다.
스스로도, 부모님도, 동생도, 친구도
그나마 이 역겹고 아직도 치기 어린 마음을 꽤 많이 털어놓는 내 배우자는
그 누구보다 많이 믿고 있다 확신할 수 있지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도 완전하게 믿을 수는 없다.
겁먹은거야, 나는 무서운거야.
그들 때문에 내가 못 믿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모두 쳐내고 있는거야.
그래
나를 외롭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며 탓을 돌리고 싶다.
나는 변했지만, 내 안의 당신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깨지 못한 것은 당신들의 탓이다, 모두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3.
날은 추워지고, 하늘은 나에게 너는 한 해동안 뭘 했냐고 묻고 있다.
나요, 후회요.
집착이요.
너무 늦어버린 미련이요.
지나간 행복의 반추요.
조금은 더 단정해진 자신에 대한 기쁨과 감사요.
내 곁에 있는 그를 향한 사랑과 미안함이 만든 여러 사과와 반성이요.
하늘은 나에게 뭘 줬나요
오늘의 당신은, 나를 향해 무엇을 보내고 있나요.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