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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시간에
엄마가 누워있는 내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 생기다 말았네..이쁠람 확 이쁘든가.. '
가만히 있다 뒷통수 한대 크게 후려맞은 것 같아
벌떡 일어나서 '딸에게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하면서 와하하 웃었다.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엄마와 나의 웃긴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다.
생기다 말았다..
요즘같아서는, 생기다 만 것은 내 외모 뿐 아니라
성격도, 재능이라 이름하는 솜씨도 포함되는 것 같다.
착하려고 노력하는데 종종 심하게 못돼먹어서
좋아해주기엔 어딘가 불편하고 모자란 성격이라던가
아예 못치진 않는데, 그렇다고 '주무른다' 정도는 아닌 피아노 실력.. 또는
다들 말해주는 걸 봐서는 '못쓴다'의 개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크게 매력을 느끼거나 타고난 것 같지는 않은 글솜씨까지..
왜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했냐고 원본 제작자인 부모님을 원망하기엔
부모님이 날 만든 시간의 서른곱을 내 맘대로 수정하며 살았다.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르의 마음이 이런거였을까
세계적인 음악가를 꿈꾸는 어린 아이들이 죽을 둥 살 둥 노력해서 음악대학까지는 들어갔는데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칭송받는 예술가였고, 난 그냥 기술 좋은 연주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하는
노력과 기술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재능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치졸한 자격지심 같은 것..
찬란하게 빛나고 싶었는데, 결과는 형광등인 것
혹은 아직 결과는 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촛불로 보이는 것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은 열정이었을까
금수저와 미러볼을 함께 안고 태어나지 못한 것이 죄일까
오히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어설픈 실력을 갖고
배우지 못한 채 그저 쓰는 것에 취해있을 때는 이렇게 답답하지 않았다.
그래,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뭐라도 된 것 같았지
...
여기를 밝히는 등이 가끔씩 깜빡인다.
아직 더 쓸 만은 한데, 참고 켜두기에는 눈이 살짝 침침해서 거슬린다.
저 등이 꺼지면 바로 갈아서 끼울 전구가 있을까?
낮에 켜는 등은 켜나마나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