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gyoung_ 2012. 2. 17. 09:10


내가 어렸을 때

작고, 약하고 소심해서 그랬는지
종종 남자, 여자아이들한테 놀림을 당하거나
친구들끼리 패를 지어 싸울 때면 쉽게 타겟이 되곤 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뒤집어 쓸 때도 있었다
지금처럼 잔인하진 않아도 
그 당시 아이들은 자신들의 거칠음을 모른 채 역설적으로 순수하게, 여과없이 자신들의 악함을 드러냈다  

어떤 때는 친구들이 편이 되어주고
어떤 때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싸움이 끝나고 나면 되려 화살이 날아온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내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꿈이란 명목으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 때면
(풍요속의 빈곤이라 많은 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좀 더 움츠러들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움츠러들고 조용할 수록,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 가족은 더 편했을 것이다

땅을 보고 다닌 기억이 많다
어깨를 움츠리고, 땅을 보고 걸었다
부러 많은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과 있을 땐 심하게 활달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면 너무나도 작은 아이가 되었다
그 후 사춘기가 찾아왔을 땐 그 감정과 상황에 도취되어 꽤나 쓸데없는 이미지를 자신에게 포장하기도 했다 

오늘 처럼 추운 날이었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다, 순간 앞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칫, 서서 앞을 보았다 
매일 한 순간도 빼지 않고 보았지만 전혀 몰랐던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 눈 앞에 훅- 들어왔다

어깨를 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등이 곧게 펴졌다

이렇게 지내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그 어린 나이에도 순간 강하게 다가왔다

그 때부터 조금씩 나는 바뀌려고 노력했다
악악대기도 하고, 좀 더 독해졌던 것 같다

내 나이 열 한살이었다

그 이후로, 똑같거나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난 습관처럼 그렇게 했다

어깨를 펴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조금은 오만하게
더 당당하게
등을 펴고
걷고
말하고

.
.
.

그렇게 어린 날부터 나는
내가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 해 겨울의 하교길이 생각이 난다

자기 자신의 어두움에 갇혀있지 말자
이유의 반은, 이 상황의 반은 내 감정이 포장되어 있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좀 더 멀리 떨어져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어느정도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많은 일은 기다리기만 해도 그냥 지나갈 것이다

그런 열 한살의 내 생각이
그리고 스물 아홉이 된 지금의 내 경험이
한 잔의 술보다, 내 곁에 오랫동안 있어주는 많은 이들의 위로보다

더 빠르고 깊게 나를 다독여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그래, 이 모든 변화도 곧 지나갈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항상 그래왔듯, 잘 하던 못 하던 내가 나를 다독이며 등을 펴고 한 발씩 걷는다면
많은 부분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진 않을 것이다

크게 화낼 일도
많이 슬퍼할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